플루티스트 / 닐스­틸로 크레머

지금은 현대음악의 연주와 윤이상에 대해 연구하는 중

   현재 오스트리아 그라츠음악대학에 교수로 재직중인 플루티스트 닐스­틸로 크레머가 국내에 소개된 것은 지난해 여름 대구에서의 초청 리사이틀을 갖게 되면서부터다. 이승호 교수가 3, 4년 전쯤 오스트리아를 방문했을 당시 그의 연주를 접하면서 받은 강한 인상이 남아 초청한 것이 그 첫 시작이다.
한국에서 보여 준 첫 인상은 중년의 안정감이었다. 음악과 함께 평생을 벗해온 그에게서는 굳이 표현하려 하지 않아도 예술가다운 풍모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크레머의 플룻은 힘과 화려함이 돋보인다. 깊고 안정된 호흡을 바탕으로 풀어 놓는 연주를 듣는 순간 '이것이 플룻의 세계구나'하고 곧 그 속으로 빠져 버리게 된 것이다. 음악을 형상화시켜 표현해 내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것이 그의 공통된 평가로 감정의 흐름이 뚜렷한 연주를 하는 것이 관객의 입장에서 강하디 강한 인상으로 각인되는 이유인 듯했다.

    지난해 리사이틀과 여름음악캠프의 지도 교수로 초빙돼 머물면서 그는 분명 한국과 좋은 인연이 될 것이라 전했다. "제게는 한국의 정서가 잘 맞아요. 한국 사람의 기질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맵고 짠 음식도 아주 좋아하고, 한국의 놀이 문화도 아주 좋아합니다." 짧은 기간 방문한 한국에 대한 기억은 그를 1년만에 다시 찾게 만들었다. 오는 8월 16일 국내 음악계를 이끌어 가고 있는 중견 및 신진 연주자들로 구성된 리더스앙상블(음악감독 용환선)과 세종문화회관 소극장 무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 외에도 연주 전에는 충주에서 여름음악캠프에 참가해 한국 학생들을 지도할 예정이다.

플룻의 화려함은 그의 연주력과 상통

   평생을 음악과 함께 한 그는 1989년부터는 오스트리아 그라츠음악대학에 재직하며 내· 외국에서 여러 강좌를 개최하고 있다. 교수활동을 제외하더라도 그의 활동영역은 독주자로서 뿐만 아니라 실내악 연주가로서, 한편으로 오케스트라 속에서 빛을 발하기도 한다.

   적어도 음악을 한다면, 연주자라면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사물을 다면적으로 분석할 수 있어야 하리라. 다른 동료에 비해 폭넓은 사고와 한 차원 높여 사물을 볼 수 있을 때 앙상블을 이루어 낼 수 있으며, 다른 이의 음악을 자신의 안으로 끌어들여 더 아름답고 조화로운 음악만듦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독일 청소년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함부르크주립 필하모닉, 북서독일 필하모닉 등에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클라우디오 아바도, 로린 마젤, 리카르도 무티, 세이지 오자와, 호로스트 슈타인 등의 지휘 아래 연주 활동을 펴면서 당대 최고연주자와 함께 한 최상의 연주를 들려 주었다.


  C로부터 3옥타브에 달하는, 그 악기를 크레머는 전체적으로 부드럽게, 낮은 소리는 약간 어두운 맛을 그려내면서도 중간음은 경쾌하고 높은 소리로 화려하고 아름답게 연주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반면에 강하게 몰아부칠 때는 이미 플룻이 아니라 강한 돌바람이었고 세상을 어지럽히는 파란과도 같이 변하는 플룻을 볼 수 있었다.

   이처럼 플룻 하나로 세상의 오묘함을 담아내는 그의 특징은 그가 자라온 환경에 기인한다. "어릴 때부터 음악적인 환경에서 자라났습니다. 처음에는 리코더를 불면서 음악을 익혔고 플룻은 그 나중이었죠.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거쳐 자연스럽게 음악이 삶 자체가 되었고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게 되면서 전공을 결심했습니다. 플룻이 가진 음색 변화의 경이로움과 그 아름다움을 사랑했어요. 그리고 이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교수로서, 연주자로서 어느 것 하나 모자람이 없는 그에게 과연 그만의 연습 방법이 있는지, 그렇다면 한국에서 플룻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위해 가르쳐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음악에 있어서 자신만의 것이란 없다"는 것을 전제했다. "소리 연습부터 시작해 스타카토 연습까지는 오렐 니콜레와 칼 하인츠 쵤러로부터 배웠으며 저의 연습방법이라면 현재도 이를 바탕으로 여러 성악가들로 배운 호흡법을 플룻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성악이나 플룻이나 모두 올바른 호흡법과 폐활량에 따라 음악은 천차만별이 되니까요."
키엘(Kiel)에서 태어난 그는 함부르크 음악대학에서 카를하인스(Karlheins) 교수와 쵤러(Gertrud Zoeller)를 사사하면서 플룻만이 가진 그 특별함을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어 나갔다. 이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카라얀 아카데미에서 활동했으며 바젤에서는 오렐 니콜레를 사사했다. .

   그는 플루티스트인 현재의 자신은 스승들이 있었기 때문이라 전했다. 얼굴의 생김이 다르듯 다양한 음악적 스타일을 지닌 학생들을 관찰하며 그 때마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지도했던 니콜레 교수, 반면에 쵤러 교수는 자신만의 교육 방침을 세우고 그에 따라 지도했다. 또한 니콜레가 플룻 독주만을 위한 곡에 중점을 두었다면 쵤러는 앙상블이나 오케스트라 곡에 중점을 두었던 것이다

   크레머는 이들 스승의 가르침을 적절히 조화시켜 완벽한 융화를 이루어냈다. 1995년 영국 쳄버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런던의 퀸 엘리자베스홀에서 데뷔한 이래 비엔나의 호프부흐르크와 연주회를 개최했으며 이후 전 유럽과 러시아, 중앙·극동 아시아와 남미 등지를 순회하며 연주회를 가졌다.

   크레머 자신의 얘기를 들으며 결론지은 것이 있다면 음악은 결코 레슨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세계적 연주를 보고 듣고 접하면서 아주 조금씩 몸에 배이게 되는 대가들의 숨결이 그 것이다. 또한 연주를 위해 머무르게 되는 세계 각국의 지역적 특색과 풍경, 온갖 자연 현상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아이디어를 얻고 있으며 모든 것이 자신만의 인스피레이션(inspiration)을 찾는 것에 상당한 역할을 했고 이것은 그의 플룻 속으로 고스란히 녹아들었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그는 모차르트의 <플룻 콘체르토>를 에른스트 코바칙의 지휘 아래 비엔나 쳄버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CD를 제작했다. 이 외에도 바흐의 <음악적 희생(Musikalischen Opfers)>이 연습곡으로 나왔으며 독일의 전 방송국과 오스트리아(ORF), 런던(BBC), 라디오 부다페스트, 모스크바에서 녹음 등 전유럽에서 라디오 방송을 위해 계속 녹음 활동을 하고 있다. 끊임없는 연구와 연주의 작업으로 자신을 재발견하고 이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이야말로 연주자로서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또한 객관적인 판단을 통해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통해 드러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의 연주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고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음악팬들이 그의 음악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지금은 윤이상에 대해 연구중

   "최근에는 현대곡에 많은 관심을 두고 오스트리아의 신작곡가들로부터 곡을 받아 초연을 하고 있습니다. 작곡자로는 한스 플로라이, 프란츠 체빙어, 게어트 큐어, 페터 레비스 등인데 저마다의 독특한 분위기와 선율로 플룻이 가진 다양성을 유감없이 드러내도록 합니다. 뿐만 아니라 연주를 위한 다양한 실험도 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그는 재즈에도 많은 관심을 두고 있음을 전하며 그라츠음악대학의 재즈과 교수들과도 연주가 계획돼 있다고 밝혔다.

     가끔 연주가 예술인가, 기술인가에 의문을 품을 때가 있다. 완벽한 기술 하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예술'이라고 이해를 하면서도 기술 그 자체만으로도 예술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크레머가 온몸을 울림통으로 만들어 플룻의 소리를 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그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테크닉을 지닌 예술가로서의 자질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바로크와 고전음악에 심취했을 그가 지금은 현대 작품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은 아마도 그동안 있어온 음악의 진행 과정을 온전히 터득하고 표출한 후에 바라는 이상과도 같은 것이리라. 혹은 기존의 것을 과감히 걷어 내고 새로운 형태를 구사하겠다는 의지로 이해해도 될는지. 분명한 것은 그가 '환타지아'를 품고 있다는 것이었다. 악보에 씌어진 기호대로 혹은 화음대로 연주하지 않고 집중하여 연구하여 크레머의 작품으로 만들어 놓는 작업에 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낭만적인 음악과 현대음악을 깊이 연구, 무대에 올리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요. 현재 한국의 작곡가 윤이상에 대한 연구와 그의 플룻 콘체르토와 플룻 독주곡, 그리고 4중주를 해석면에 치중하여 공부하고 있어요."

    한국인의 정신이 담긴 윤이상의 곡을 연구한다는 것을 들으며 결국 음악은 세계인 모두에게 통용되는 흠모의 대상이란 생각이 든다. 인도양을 건너야만 만날 수 있었던 그를 오는 8월 서울에서 볼 수 있다는 점도 그렇고. 전형적인 서양인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부드럽고 온화한 동양의 미소, 게다가 한국인다운 기질이 담겨있기에 그의 서울연주가 더욱 기대된다.